학생들 사이의 활발한 상호작용은 교수자라면 다들 바라는 것이겠지만 외국어를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능력은 텍스트나 사전, 문법책만으로는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습한 언어를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체화하려면 대화에 참여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언어란 대화 주제, 상대방, 상황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바뀌는 생물과 같은 것이어서, 유연한 활용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생들이 대화와 토론 같은 상호작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동기 부여할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학생들이 대화하고 싶어하는 주제와 효과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학습 활동을 찾는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학생들이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편안한 교실, 스스로 말하고 싶게 만드는 우호적이고 친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정의적인 측면은 외국어로 대화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수업을 하다 보면 외향적이고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학생들이 대화를 주도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주변인이 되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능숙도가 높지 않거나 표현 능력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학생들에게도 참여를 독려해보지만 효과가 크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은 자아를 보호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가 인간적으로 교류하고 가까워지는 분위기에서는 이러한 학생들도 말을 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우호적인 반응을 보며 대화에 참여할 용기를 내게 되고, 표현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서로 도와가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무엇보다도 서로 가까워지며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이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대화에 즐겁게 몰입하는 과정에서 학생의 생산적 언어 도구가 늘어나고 이는 결국 학생의 긍정적 언어 자아 형성으로 귀결될 것이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나서 학생들이 서로 익숙함을 넘어 친해졌을 때 그 학기 수업이 잘 되었다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비대면 수업에서도 처음 만난 학생들이 서로 친밀해지는 것이 가능할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 질문이 이제는 중요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줌(Zoom)과 같은 플랫폼이 있어 서로 “대면”하며 대화하는 형식의 수업이 가능해졌지만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스크린의 벽까지 없애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가상 교실에서는 뭐랄까 학술대회에서와 같은 격식성이 느껴져 배움을 위한 친밀한 모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대화도 시도하고 아이스브레이킹(ice breaking) 활동도 해 보지만 어색함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가상 공간이 사람들이 친밀하게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어쩌면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비대면 수업에서 친밀함을 형성하는 것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기술적인 한계와 관계 있는 것 같다.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해 나가는 데는 언어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대방의 생각에 대한 우호적인 관심과 공감은 표정과 몸짓에서 바로 드러난다. 하지만 줌을 통한 대화에서는 비언어적 지지를 보여주기도, 느끼기도 힘들 때가 많은 것 같다.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을 때 우리는 상대방을 보고 있지만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우리의 시선은 카메라를 거치며 왜곡된다. 대화하며 서로 공감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표정과 자세가 변하며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이치이다. 그러나 스크린 앞에서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표정과 자세의 변화가 적어진다. 그만큼 서로의 마음의 공명을 표현하기 힘들다. 이런 경우 우리는 대부분 말에 의존하여 의사소통해야 한다. 모국어만큼 유창하게 언어적인 표현을 할 수 없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대화와 관계 맺기가 더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읽기 힘들 때 말을 이어 나가기가 조심스럽고, 서로의 말에 미소 짓고 끄덕여주는 횟수가 줄어드는 만큼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반응에 맞추어 대화의 주제와 흐름을 조절해 가기도 더 힘들 것이다.
비대면 환경에서 수업을 하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하지만 가상 공간과 그에 맞는 상호작용의 문법에 익숙해지기에는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비대면 수업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친밀함을 쌓을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배워 나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새롭게 시작하는 학기가 끝나고 나면 우리 반 학생들이 얼마나 친해져 있을지 궁금하다.
글쓴이: 김은아 교수, 서울대 기초교육원(대학영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