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부터 계속 서울대학교에서 교양 수학을 가르쳐 왔기 때문에 교실에서 하는 대면 강의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2020년 3월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온라인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었을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컴맹에 가까운 컴퓨터 관련 지식으로 온라인 강의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습니다. 웹캠과 마이크를 사용해 본 경험도 전혀 없어 어떤 기기를 구매해야 하는지도 고민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공대에서 특정 웹캠과 마이크를 추천하는 이메일이 와서 즉시 주문하였는데, 놀랍게도 2주 후에 기초교육원에서 배포한 웹캠이 같은 제품이었습니다. 그 웹캠에는 마이크가 내장되어 있었지만, 공대에서 추천한 마이크가 성능이 좋아 보여서 마이크를 따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웹캠과 마이크를 집에 있는 컴퓨터에 설치하고 남은 웹캠은 연구실에 설치하니 모든 장비가 갖추어진 듯하여 온라인 강의에 대한 두려움이 다소 감소했습니다. 더구나 집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도 최근에 교체했으니 비대면 강의의 기본 장비는 모두 갖추어진 것 같았습니다.
이제 실제 온라인 강의를 설계해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컴맹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고 효과적인 비대면 강의를 할 수 있을까? 혹시 과거의 강의 동영상 제작 경험들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2012년경에 칠판 판서로 문제 풀이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강의실 조명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13년의 전자칠판과 ppt 파일을 이용한 동영상 제작한 경험도 떠 올려 보았습니다. ppt 화면에 밑줄을 그으면서 설명하는 방식이었는데 강의 전달력에 있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2014년~2017년 사이에 촬영하여 SNUON에 탑재한 강의 동영상 제작 경험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2015년 2학기에 촬영된 SNUON <공학수학 2> 강의화면:
칠판 판서를 주로 하면서 강의하였다.
그때는 촬영기사도 있고 편집인력도 있어 쉽게 촬영과 편집을 할 수 있었지만,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촬영과 강의를 동시에 하는 것은 두려웠습니다.
약 10일 동안 인터넷에서 온라인 강의 방법을 검색하고 온라인 강의 사이트를 찾아다닌 후, 고민 끝에 강의록을 스캔하여 pdf 파일을 만들고 그 pdf 파일 위에 전자 필기를 하는 방식으로 실시간 zoom 강의를 하기로 정했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소통이고, 처음이라 어렵겠지만, 실시간 zoom 강의는 학생들과 소통하는 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마음으로 손으로 직접 쓴 강의록의 스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활자화된 강의록은 저작권 침해의 우려가 있어 포기했습니다. 온라인 필기를 위해 13인치 액정태블릿을 구매하여 비대면 첫 학기 강의를 시작했지만, 태블릿 필기는 어색했고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2020년 3월 강의화면:
글씨가 매우 크고 알아보기 힘들다. pdf 파일에 빈 페이지를 만들어서 필기하였다.
온라인 판서 강의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 5월이 되자 태블릿 필기에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2020년 5월 강의화면:
작은 글씨도 알아볼 수 있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생소하고 두려웠던 비대면 첫 학기 강의를 무사히(?) 마친 후에 강의 개선을 위한 투자를 했습니다. 스크롤다운 기능이 있는 pdf 필기 프로그램들을 여러 개 구매하고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구매하였습니다. 무겁지만 강력한 22인치 액정태블릿도 구매하였습니다. 좋은 장비와 프로그램을 모두 갖추고 진행한 2020년 여름학기에는 온라인 비대면 강의가 더 수월하게 느껴졌습니다. 칠판에서 하는 판서와 다르게 태블릿 전자 필기는 지우지 않고 무한히 추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30분 전에 판서한 내용도 다시 보여 줄 수 있어서 전자 필기가 칠판 필기보다 더 유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2020년7월 강의화면:
칠판처럼 편안하고 능숙하게 태블릿 필기가 가능해졌다.
2020년 2학기가 되자 태블릿 필기와 칠판 판서의 차이점을 더 뚜렷하게 알게 되었고, 태블릿 필기의 장점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짙은 녹색등 다양한 색의 펜을 사용하거나 펜의 굵기를 조절하여,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강의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2020년 9월 강의화면:
다양한 색과 굵기의 펜과 적절한 여백을 이용한 판서가 가능해졌다.
2020년 12월 강의화면:
pdf 파일과 태블릿 필기가 조화되기 시작했다.
2020년 겨울학기에는 SNUON에 있는 동영상을 이용하여 역전 학습을 시도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동영상을 시청한 후 실시간 zoom 강의에서는 질의응답만 하는 방식이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SNUON 동영상은 화질이 좋아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지만, 만약 제가 혼자서 제작한 동영상이었다면 반응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이때 zoom 강의는 오로지 소통의 시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의 변화로 기하와 벡터를 배우지 않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2021학번 신입생들을 위해 남계숙, 김우찬 교수와 함께 온라인 강의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교재는 개인적으로 직접 저술한 강의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에 대한 걱정 없이 활자화된 pdf 파일을 사용하였습니다. 학생들이 보기 좋도록 Inkodo라는 필기 프로그램을 구매하여 사용했는데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2021년 2월 강의화면:
신입생을 위한 <기하와 벡터> 강의. 활자화된 pdf 파일을 사용하였다.
비대면 강의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나고 2021년 1학기가 되자, 수강생들 관점에서 비대면 강의를 새롭게 설계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강의록을 좌우로 나누지 않고, 가로로 길게 보이도록 다시 써서 사용해 보았는데, 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15인치 노트북 화면에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2021년 3월 강의화면:
가로로 길게 쓴 강의록을 사용하여 학생들이 노트북에서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2021년 5월이 되자 온라인 판서의 장점을 더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을 확대해서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021년 5월 강의화면 (1):
화면을 4배 확대하여 그림을 그리고 설명하였다.
2021년 5월 강의화면 (2):
화면을 원래대로 축소하여 강의를 계속 진행하였다.
계절학기를 포함하여 비대면으로 다섯 학기를 강의한 후, 저는 비대면 온라인 강의에서도 충분히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강의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강생 중에는 외국에 체류하면서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도 있었는데 강의 진행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성실하지 않거나 소극적인 학생들은 비대면 수업에서 교육의 만족도가 떨어지겠지만,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학생들은 대면보다 비대면에서 더 많이 질문하면서 강의에 참여하고 비대면 강의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코로나 위기가 극복되더라도 비대면 수업의 장점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대학교육이 발전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이 저의 좌충우돌 비대면 강의 경험이었습니다.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김영득 교수, 서울대 기초교육원(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