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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준 전 기초교육원장 인터뷰 “학생 주도적 경험을 통해 창의성과 적응력을 길러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캠퍼스에는 모처럼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끊이질 않는데요. 정말 오랜만의 대면 수업으로 어색하기도 설레기도 하는 요즘입니다. 개강이 벌써 2주 지났는데요, 여러분 모두 행복하고 보람찬 한 학기가 되시길 바랄게요!

얼마 전, 유재준 전 기초교육원장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유재준 전 원장님은 2019년 2월 취임 이후 3년간의 재임을 거쳐 2022년 2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셨습니다. 재임 중에 추진하셨던 교육 사업들과 앞으로의 교육 방향에 관한 의견을 들어보았는데요, 짧은 시간의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기초교양교육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인터뷰 기사를 통해 서울대학교 기초교양교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재준 전 기초교육원장(자연과학대학 물리천문학부)

Q1. 기초교육원장으로 재임하시면서 진행하셨던 전반적 사업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기초교육원을 만든 지 약 20년쯤 되었어요. 기초교육원을 만들 때의 취지는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자신의 전공과 함께 기초나 교양 교과목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취지에 맞게 초기 기초교육원은 기초 교육과 교양 교육에 관한 틀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대학 교육이 사회에 나가서 소위 말하면 균형 잡힌 교양인이자 한 분야의 전문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언젠가부터 대학에서의 교양인으로서 받는 교육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 잘 만들었지만, 오랫동안 운영이 되다 보면 타성에 젖는 것들도 있기 마련이고요. 학교 시스템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게 아니라 최신 경향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서 정체되지 않도록 해야 하거든요.
대학 교육을 말할 때, 알파벳 ‘T’ 모양에 빗대서 자주 이야기해요. ‘T’를 보면 몸통(‘|’)은 줄기가 깊은 모양으로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높은 수준의 지식과 통찰을 의미해요. 팔(‘-’)은 옆으로 길게 뻗어 주변과 연결된 형태인데, 몸통(‘|’)이 넘어지지 않게 팔 벌려 중심을 잡아주죠. 교양 교육은 이런 팔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우리 학생들한테 T자형 교육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특정 지식을 전달받고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문제를 잘 발견해내고 탐구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주도적 인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학생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틀려도 괜찮으니까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장려하고자 했어요. 이 과정에서 소통과 공감을 경험하기를 바랐고요.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창의력(Creativity), 소통(Communication)을 합해서 3C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것을 우리 교육과정 안에 잘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Q2. T자형 교육에 대한 설명이 인상 깊어요. 어떤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셨나요?

기초교육원장이 되면서 기존에 있던 좋은 프로그램들을 조금 더 발전시켜서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어요. ‘신입생 세미나’에서 교수님과 학문을 탐구하고 토론 수업을 하는 데서 나아가 학생이 창의적인 도전까지도 직접 실천해보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추가로 창의와 도전이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개설했습니다. 또, ‘융합 주제 강좌’를 확대했어요. 여러 전공의 교수님들이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면 학생들은 관련 주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논지를 찾아내고 토론을 통해 논의를 확장하는 과정을 거치는 ‘T’자형 교육의 대표적 사례이거든요. 그리고 학생 자율 연구도 확대해서 많은 학생이 참여하도록 했고요. 새롭게 컴퓨팅 교육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아무래도 AI가 최근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을 했잖아요. 인문사회계 학생들에게 좀 더 기회를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아주 기초적인 컴퓨팅 기초라는 교과부터 시작해서 컴퓨팅 핵심을 거쳐 컴퓨팅 응용 과목까지 3단계로 교과 커리큘럼을 만들고 진행했죠. 저는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균형 잡힌 인재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보완하고 발전을 시키는 일에 중점을 두었어요. 이러한 방향이 기초교육원 교과 과정이나 프로그램에 반영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Q3. 2021년에 기초교육원과 교수학습개발센터의 조직통합이라는 중대한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를 통해 기초교육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기초교육원이 기초교양교육 전담 기관이라면 교수학습개발센터(CTL)는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에 대한 도움을 주는 기관이죠. 두 기관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같았고, 두 기관의 서비스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이전부터 있었어요. 기초교양교육 프로그램이 교육 방법이나 교육 시스템과도 연결되어 있거든요.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 방법을 시도할 때 개별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시도할 수도 있지만, 학교 전체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한다면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기존에 CTL에서는 교수법에 관심을 두는 소수 그룹의 학생들이나 교수님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교육적인 효과가 아무래도 적었거든요. CTL과 기초교육원이 합쳐지면서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홍보가 함께 이루어지고 교육적인 효과가 훨씬 커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올해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예비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요, 입학 전 전체 학생들에게 기초 교육을 제공하는 새로운 교육적 시도였어요. 다른 예시로는 맞춤 교육을 위해 튜터링 프로그램을 확대해 진행한 바가 있어요. 수강 인원이 많은 강좌는 하이브리드 수업 형태로 전환하여 훨씬 많은 학생이 높은 교육적인 효과를 누리면서 수강할 방법을 고안해내기도 했고요. 새로운 교육의 시도를 소규모로 CTL에서 할 수도 있지만, 조직통합 후에는 기초교육원에서 전체 교양교육 프로그램에 직접 적용하여 운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에요. 앞으로도 우리가 새로운 교육적 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볼 수 있는 거죠. 교수·학습은 기초교양교과목뿐만 아니라 전공 교과목에도 적용될 수 있잖아요. CTL과의 통합을 거치면서 기초교육원의 역할이 더 확장되는 측면도 있어요.

Q4.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 혹은 ‘디지털 전환시대’라는 용어가 많이 보이는데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향후 서울대학교는 어떤 교육 발전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예전에는 기초교양교육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었어요. 문과 학생들은 수학과 관련된 교과목을 웬만하면 안 들었었죠. 이번에 컴퓨팅 교육을 시작한 이유에는 AI 열풍도 있지만, 컴퓨팅 교육이 전통적인 문과와 이과의 경계를 넘어서 서로가 공유하는 기초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공통된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많은 교수님이 모여서 ‘우리 학생들한테 컴퓨팅 가르친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를 주제로 몇 개월 동안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그 결과물로 두꺼운 연구 보고서가 나왔는데, 첫 번째 핵심은 학생들이 컴퓨터로 생각하는 법(computational thinking)을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컴퓨터의 사고방식으로서 접근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기가 늘 생각하던 방식대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처럼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해결 방안을 떠올릴 수 있는 거죠.
두 번째 핵심은 데이터 과학(data science)이에요. 우리가 보통은 연역적인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런데 컴퓨터 안에서는 미리 답을 정해놓지 않고 쭉 늘어진 데이터를 살펴보면서 거꾸로 추론해내기도 해요. 데이터를 보고 그 안에 있는 어떤 규칙이 있는지를 찾아보는 방법이 데이터 과학입니다. 예를 들어, 코로나 19 확산 상황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어요. 이전 데이터가 전개되어 온 추이를 살펴보고,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 확진자 수의 증감에 관한 인과관계를 데이터 형식으로 분석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추론하니까요. 프로젝트 연구를 통해 기초교육원이 컴퓨팅 교육을 한다면 이 두 가지를 차근차근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결론을 얻었고, 컴퓨팅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게 된 거예요.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컴퓨터나 기계를 잘 써야 하고 굉장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닐 수 있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온갖 종류의 데이터가 난무할 테니까, 컴퓨터적으로 사고하여 디지털 정보를 스스로 분석해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죠. 우리가 단순히 기술을 익힌다고 해서 될 수 있는 일은 아니예요. 아, 물론 교육에서는 기술도 가르쳐줘야 해요. 왜냐하면 아무것도 못 하면서 입으로만 떠들 수는 없잖아요(웃음). 자기가 조금은 다룰 줄도 알면서 전체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기초교육원은 앞으로도 학생들의 수요에 맞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강좌를 제공할 계획이에요.

Q5. 4차 산업혁명 외에 향후 서울대학교 교양 교육이 고려해야 할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학교 교양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학생들의 적응력을 키워주는 것이에요. 환경에 잘 적응하고 따라가서 소위 그 파도 앞에 올라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죠. 그런 걸 우리가 프런티어(frontier)라고 부르잖아요. 나는 그게 대학 교육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특정 전공에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에요. 어떤 전공이든지 그 분야에서 프런티어가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에 적응을 잘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해요. 서울대에는 훌륭한 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오는데,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더 잘 키울 수 있도록 기초교양교육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대학의 수업이 지식의 습득만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돼요. 배우고 시험 보고 끝나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배운 지식을 이용해서 자신이 한 발짝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학의 시스템이 이를 도와줘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를 많이 펼쳐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해요. 경험이 중요하거든요. 물론 전공 학과에서 전공 졸업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배울 수도 있겠지만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을 최대한 만들어주는 일이 필요해요. 그래서 기초교육원에서 앞서 말씀드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고요.
학교에서 조직적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지만, 사실 아직 부족해요. 예를 들어서 학생 자율 연구는 한 학기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40~50명 정도인데, 지금보다는 한 10배 정도는 참여가 증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스템적으로 아직 충분히 제공을 못 해주고 있는 것이죠. 정리하자면 시대가 바뀌면서 굉장히 새로운 일들이 많지만 결국 학생들한테는 근본적으로 자기 스스로 뭔가를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양 프로그램이 더 갖춰져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현재에 기초교육원이 진행하고 있는 교육에 더해 계속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Q6. 적응력과 자율성을 길러야 한다는 말씀이 와 닿네요.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을 취하기보다는 적어도 앞으로 10년 후에 어떤 사람이 될지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대학 생활을 하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학생들에게 긴 안목을 갖도록 도와주는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기초교육원이 맡을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데 쉽지는 않더라고요(웃음). 어쨌든 제 바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시도를 했는데, 이것들이 여러분께 잘 전달되어서 자신의 10년 후, 20년 후를 적어도 한 번씩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인터뷰 및 기사 작성: 기초교육원 블로그 학생기자 지가영>